고교 시절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의 세례명은 스테파노였습니다. 좋은 분이시다보니 ‘스테파노는 모두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같은 감사함 덕분일까요, 아니면 대학생이 되었다는 기쁨 때문일까요. 저는 입학식 때 하느님께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한 아이에게 세상이 되어주겠다.’고 말입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말이죠.
남편은 첫 만남에서 자신을 ‘스테파노’라고 소개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또 한 명의 천사를 보내주신 거죠. 20여 년을 함께 한 지금도 저는 스테파노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감사가 커진다는 뜻인가 봅니다. 지난날 원장 선생님이 제게 해주신 것처럼 한 아이의 세상이 되어주고 싶다는 바람이 커져갔습니다. 때마침 보육 시설의 부원장님으로 계신 조반니 신부님께서 초등학생을 위한 가톨릭스카우트의 대장이 되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윽고 저희는 그곳에서 사랑스러운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40여 명의 아이들이 성모님께 편지를 쓰고 손수 만든 묵주를 쥔 채 소리 높여 성모송을 외칠 때면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좋으실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스카우트 활동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저희는 삼촌과 이모가 됩니다. 유난히도 남편을 따르던 소피아에게는 대부모가 되었습니다. 첫 만남 이후로 소피아는 한 달에 한 번 저희와 바깥나들이를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야무지게 성호를 긋고 “대부모님의 진짜 딸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모든 때는 하느님이 정하시는 것”이라며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고심 끝에 저희는 소피아에게 대부모가 아닌 부모가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이는 저희가 더 이상 스카우트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소피아 역시 나고 자란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었죠.
시설과 의논해 소피아의 선택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나름 심사숙고한 소피아는 “대장님이 없으면 친구들이 슬퍼할 것 같다.”며 자신 또한 “사람들을 모두 만나지 못하면 슬플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이어서 “모두가 슬퍼하지 않을 때 갈 테니, 기다려 달라.”고 덧붙였습니다.
소피아의 기도처럼 그때는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가 될 테니,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피아의 따뜻한 선택 덕분에 저희 또한 스카우트 대장으로서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련의 모든 일들은 아이가 없는 저희 부부를 위해, 부모가 그리운 소피아를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계획이자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에페소서 3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언제나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시니까요.
한경아 아녜스 |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