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대의 영성 |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청년을 우리의 손님으로 맞이하는 자리입니다. 이 특별한 만남을 준비하며 ‘환대’의 정신을 여러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영성·구약·신약·철학·인간학·교의·유교·불교·베네딕토 수도 전통, 아홉 가지 영역을 통해 환대가 지닌 풍성한 의미를 차례로 조망합니다. 낯선 이를 기꺼이 맞아들이는 일이 어떻게 신앙의 실천이 되고 참된 만남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욥기 31장에서, 욥은 자신을 심문하듯 스스로의 삶을 짚어 나가며 자신의 결백에 대해 맹세합니다. 불의를 저지르거나 거짓을 말한 적 없는지, 종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았는지, 타인의 불운과 불행에 기뻐하지는 않았는지⋯. 이렇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던 그는 길손과 나그네에 대한 고백을 덧붙입니다. “나는 언제나 길손에게 문을 열어 놓아 나그네가 밖에서 밤을 새운 일이 없다네.”(욥 31,32) 짧은 한 구절이지만, 놓치기 쉬운 사실 하나가 숨어 있습니다. 욥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우츠 사람이었고, 시나이 계약 이전 시대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욥은 율법을 몰랐습니다. 그를 이끈 계명이 없었음에도 그의 문은 늘 길손들을 향해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환대는 누구를 본받거나, 어떤 명령을 따른 결과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습니다. 규정과 법규가 주어지기 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사람의 양심에 새겨 놓으신 선함과 덕이 있었고, 욥은 그것을 따랐다는 뜻입니다.
교황 그레고리오(590-604년 재위)는 《욥기 윤리》에서 이 구절을 두고, 욥이 자신의 선행을 자랑삼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욥은 길손과 나그네에게 자신의 문을 열며, 이를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나누는 태도라고 겸손히 증언하고 있다고 교황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참된 환대는 내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을 나누는 (그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의 겸손함이라는 뜻으로 이 가르침을 알아듣습니다.
욥기 31장의 다른 대목에서 욥이 왜 문을 열어 두었는지에 대한 또 다른 이유, 신앙의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 배에서 나를 만드신 분이 그도 만드시고 바로 그분께서 우리를 모태에서 지어 내지 않으셨던가?”(욥 31,15) 인간은 모두 하느님의 손으로 빚어졌다는 성찰, 그것이 욥이 밤새 문을 열어 둔 이유였습니다. 복을 받으려는 계산도, 남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도 아니었습니다. 창조주와 인간에 대한 묵상과 성찰 안에서 울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욥은 넉넉한 마음으로 길손과 나그네를 맞아들였습니다. 문 앞에 선 길손에게, 계명 때문이 아니라 그 나그네 역시 하느님의 손으로 빚어진 존재임을 알아보기에 문을 여는 것, 그것이 욥이 남긴 환대의 영성입니다. 그 문 앞에 선 길손과 함께 하느님 의로움으로의 초대가, 하느님 나라로의 초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욥기는 알려줍니다.
욥의 열린 문이 그가 하느님 백성이라는 것을 드러내기에, 그에게 하느님 나라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가 보여준 환대의 덕이 그가 누구인지를 드러내었듯이, 이제 길손을 향해 활짝 열린 우리의 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낼 것입니다.
최승정 베네딕토 신부 | 사제평생교육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