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벨탑 이야기에서 ‘같은 말’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드높이려 하지만, 하느님께서 언어를 뒤섞으시자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온 땅으로 흩어집니다.(창세 11,1-9) 우리는 흔히 이 사건을 하느님께 도전한 인간이 벌을 받은 이야기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성서학자 장 루이 스카(Jean Louis Ska)는 또 다른 해석을 제시합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 ‘같은 말을 한다.’는 표현은 통치자 뜻에 동의하고 복종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바벨탑 이야기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하나의 권력 아래 통합하려 했던 제국의 건설과 실패를 보여줍니다. 특히 성경은 하느님께서 탑을 직접 파괴하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을 뒤섞으시자 소통이 단절되고, 그 결과 성읍 건설이 중단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디지털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21세기 초 사람들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인류를 하나로 연결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가 동일한 플랫폼과 기술적 질서에 의존하면서 새로운 권력이 형성되었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기술이 반드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점차 드러났습니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의견만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을 적대시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음모론이 확산되면서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공통의 판단마저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된 디지털 사회가 역설적으로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새로운 바벨이 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사회를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사회를 유지하려면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구성원 사이의 신뢰와 공동의 가치가 필요합니다. 특히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공동선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있어야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은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을 뿐, 그 자체로 신뢰와 이해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자신의 주장만 고집한다면 기술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보다 진리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인간의 자세입니다.
이제 바벨탑 이야기를 우리의 일상에 비추어 봅시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자 타인에게 내 생각을 강요합니다. 내가 접한 정보만을 진실로 믿으며 다른 의견에는 귀를 닫기도 합니다. 인간의 교만은 높은 탑을 세우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에서도 드러납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공동선을 함께 존중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하는 태도입니다.
방종우 야고보 신부 |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