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이라도 읽어 보셨나요?” 이런 질문에 마음이 찔려 성경을 펼쳤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저도 여러 번 도전했지만 늘 첫머리로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창세기의 첫 구절은 외웠습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어느 날 이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30대에 예비군 훈련을 받던 때였습니다. 훈련 마지막 날, 언덕에 앉아 아름답게 펼쳐진 노을을 바라보다 생각했습니다. ‘저토록 아름다운 하늘은 오직 하느님께서만 만드실 수 있겠구나.’ 창조주 하느님이 성경 속에만 계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사랑에 흠뻑 빠져 버리도록 저를 꼬드겨 주세요.” 마음에서 피어난 기도였습니다. 이후 산책길이나 사도직 여행에서 노을을 만날 때마다 같은 기도를 바쳤습니다. 노을은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노을은 매일 볼 수 없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조차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날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 문득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하루라도 만나지 못하면 아쉬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 만나고 싶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만나는 일에는 왜 소홀했을까요? 노을을 기다리지 않고도 예수님을 만날 길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사였습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혼인한 지 5년도 되지 않은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이 이해되었고 결심에도 공감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헤어지는 결정은 한 달만 미루어 봅시다. 그동안 함께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예수님께도 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는지 말씀드려 보세요.” 부부는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한 달 뒤에도 결심이 바뀌지 않으면 혼인 무효에 관해 상담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먼저 전화를 걸자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그 말을 듣자 훈련장 언덕의 노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아름다운 하늘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 사랑을 날마다 만나고 싶어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이제는 미사를 통해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된 부부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노을 속에서만 당신을 드러내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아파하고 사랑을 잃었다고 느낄 때에도 곁에 계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그분께 나아갈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랑을 다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마음에 사랑을 일으키십니다. 어쩌면 오래전 제가 드렸던 기도는 지금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손세공 엘디 | 포콜라레 운동 회원, 가정 문제 무료 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