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는 11월 ‘위령 성월’에 돌아가신 모든 연령들을 위해 기도 바치며, 그 첫날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시작합니다. ‘위령 성월’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시작한다는 점과 그다음 날이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두 날의 전례력상 기원은 서로 다르지만, 11월 위령성월에 그 시작을 연이어 기념하는 데에는 어떤 섭리적 혹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하늘에 계신 복된 성인들의 ‘천상 교회’와 지상에서 순례자로 있는 우리들의 ‘지상 교회’, 그리고 ‘(연옥에서) 남은 정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돌아가신 분들’ 모두가 일치하여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고 믿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962항 참조) 우리보다 세상을 먼저 떠나신 분들의 존재가 죽음으로 끝난 것은 아니며, 아직 정화가 필요한 분들은 연옥에서 정화 과정을 거치고 있고, ‘천상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밀접하게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전(全) 교회의 성덕을 더욱 견고케 하며, 끊임없이 성부께 전구하며,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상에서 쌓은 공로를 보여주고 계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956항 참조)
위령 성월 첫날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기념함은, 우리도 죽은 이후에 거룩한 성인들의 무리에 들어 그분들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북돋워 줍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초대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는 호칭 중에 ‘성도들’(거룩한 이들)이라는 호칭을 성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1코린 6,2; 2코린 13,12; 필리 4,22 등)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거룩함’이란 무엇보다 ‘하느님의 특성’이며, 우리 편에서는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가며,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성도들’로서,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거슬러, 눈에 보이는 가치, 물질적인 가치를 훨씬 넘어 ‘영원한 가치’를 믿고, 그 가치를 추구하고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이 오늘 복음에 나와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3–12) 세상은 더 높은 자리를 서로 탐하고, 상대를 억누르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난과 온유와 자비와 의로움과 평화 등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그 안에 ‘참된 행복’,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