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로는 사건이 급진전합니다. 성전을 정화하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진 후에 체포되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가 부활하시는 사건이 모두 일주일 동안에 이루어집니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나서, 이튿날에야 성전을 정화하신 것으로 묘사하며 행적을 느슨하게 진행하지만,(마르 11,1-19 참조) 마태오 복음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자마자 성전을 정화하셨다고 전합니다.(마태 21,12-13 참조) 장사하는 이들을 모두 쫓아내고 환전상들과 비둘기 장사들의 집기를 둘러엎는 획기적인 사건을 벌이신 겁니다. 성전이 수행해야 할 본연의 역할을 분명히 하셨던 것이죠.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마태 21,13)
당대에 성전은 네 개의 뜰로 구획되어 신분에 따라 출입이 제한되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구역은 사제의 뜰, 사제에게 제물을 봉헌하러 가는 남성들만 출입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 그 아래에서 남성들의 봉헌을 지켜볼 수 있는 여인의 뜰, 성전 제사에 필요한 돈을 바꾸어 주거나 제물을 준비하는 이방인의 뜰로 구획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상거래가 이루어지던 이방인의 뜰에서 성전을 정화하신 셈이죠.
일상에서 사용하던 돈은 언제 부정을 탔는지 모르기 때문에 성전에 봉헌하기 위해서는 정결한 돈으로 바꾸어 줄 환전상이 필요했습니다. 아울러 비둘기는 가난한 이들이 바치는 희생 제물이었기에 이를 거래하는 비둘기 장사들도 반드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들의 탁자와 의자를 뒤엎어 버리셨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데 필요한 역할이지만 본질을 망각한 채 상거래에서 이익을 보는 쪽으로 변질되었기 때문 아닐까요.
‘강도들의 소굴’은 이들이 상거래에서 부당한 이익을 많이 보았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과일 가격이 지방의 3~6배에 달했으니까요. 그뿐인가요. 가난한 이들이 희생 제물로 바치는 비둘기 가격의 경우, 과월절 등 특수가 있을 때는 100배까지 뛰기도 했습니다.
성전 정화 사건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약간 섬찟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작당해서 주인의 아들을 죽여버린 소작인들을 포도밭 주인이 가차 없이 없애버렸다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를 들 수 있습니다. ‘죽인다’, ‘없애버린다’와 같은 강한 표현이 몇 번 언급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연상케 하는 이 비유를 듣고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자기들을 두고 한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려 합니다.(마태 21,33-46 참조) 이후로 예수님께서는 유다교 지도자들과 사이가 완전히 벌어지다가 유다교를 심판하는 설교를 하기에 이르십니다.
이우식 베드로 | 성서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