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성야 미사에는 부활초의 불을 댕겨 신자들이 손에 든 초에 전해주는 예식이 있습니다. 불을 받은 사람이 옆 사람에게 불을 붙여주면, 하나의 불은 성전 안의 모든 사람에게 퍼져 나갑니다. 그렇게 작은 불빛들이 모여 어두운 성전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밝힙니다.
이 예식을 할 때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누면서 세상을 밝혀야 함을 새롭게 떠올립니다. 나누어진 촛불이 그러하듯이, 사랑은 나눈다고 줄어들지 않습니다. 내가 건넨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그렇게 퍼져 나가 세상을 밝히고 따스한 온기를 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두 계명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은 현대 심리학이 말하듯,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웃에 앞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사랑의 첫 자리에 둘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참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 권력, 혹은 나 자신을 사랑의 맨 앞자리에 둔다면, 다른 사람은 뒤로 밀려나거나,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면, 인간은 결코 소외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언제나 모든 사람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이 특별히 이방인과 과부와 고아처럼 약하고 어려움에 놓인 이들을 향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그들이 자격을 갖춰서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특별히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하기에, 이웃 사랑은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척도가 됩니다.
제2독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이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보여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해 받은 테살로니카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것을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를 비롯한 주변 지역 사람들에게 다시 전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복음은 이렇게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며 마침내 온 세상에 퍼져 나갔습니다.
세상에 사랑이 넘쳐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깊은 친교 안에서,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우리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자신도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해줍니다. 옆 사람에게 건네준 작은 불씨가 온 성전을 밝혔듯이, 이웃에게 베푼 작은 사랑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출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