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여름 한 젊은 약사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교 윤리에 어긋나는 약은 조제하고 싶지 않은데, 만약 그것을 다른 약사에게 부탁할 경우 악한 행위를 전가하는 것이 되지 않느냐는 아름다운 질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낙태약 ‘미프진’의 도입을 둘러싼 논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약물의 안전성에 집중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인 의사와 약사의 ‘양심 거부의 문제’입니다. 의료인에게 낙태약의 처방과 조제는 단순한 업무가 아닌, 생명을 해치는 일에 대한 참여 여부의 문제입니다. 프랑스에서는 2020년, 낙태약을 약국에서 직접 조제하도록 하자, 약사 관련 단체가 양심적 거부권을 보장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의사 등에게 인정되는 낙태 참여 거부권이 약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약사뿐만 아니라 의사에게도 낙태 관련 양심적 거부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법률 조항이 없습니다. 헌법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양심에 따른 낙태약 처방·조제 거부가 어디까지 보호될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약의 도입과 함께 의료인들의 양심을 어떻게, 어느 범위까지 보호할 것인지는 반드시 논의되어야 하는 사항입니다.
한편, 약 처방 및 조제를 다른 의료인에게 넘기는 문제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직접 행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 악이 이루어지도록 연결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868항은 다른 사람의 죄에 고의로 관여한다면 죄의 협력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답은, 자신의 거부가 생명에 관한 도덕적 판단에서 비롯되었음을 명확히 밝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다른 이의 죄를 승인하거나 행위에 관여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 역시 자신의 양심에 비춰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숙고하고 판단하도록 돕는 일이 됩니다. 이렇듯 양심을 존중한다는 것은 각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숙고하고,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바에 따라 책임 있게 응답하도록 기회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의료인에게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생명에 관한 논의에는 그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의 양심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에서 악에 협력하는 문제도 함께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악한 행위를 알면서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눈을 감고 있지는 않은지요. 죄악을 알릴 책임이 있음에도 침묵함으로써 그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선과 악을 판단하는 데 있어 때로는 게으르지는 않은지요. 이렇듯 양심은 나만 죄를 짓지 않으면 된다는 소극적인 마음이 아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명히 말할 용기까지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방종우 야고보 신부 |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