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저는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이 구절을 좋아합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지 잘 보여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표지이며,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을 처음 만나면 가장 먼저 그 친구의 이름을 알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기억하여 이름으로 불러주려고 합니다.
돈 보스코 성인도 청소년을 만나면 이름을 불러가며 인사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소중히 불러주는 것은 그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일과도 이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 살레시오 여름 신앙학교에서 여름 사도직을 했을 때입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 동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대한 사랑과 관심을 전하라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살레시안들이 친구들을 처음 만나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친구들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친구의 이름을 불러주면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어요?”라며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관심과 사랑의 표현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자주 경험합니다. 아침을 열거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한 말씀’을 전할 때 친구들이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조용히 이름을 불러봅니다. “○○야.” 그러면 흩어졌던 시선이 다시 돌아옵니다. 다시 저를 바라보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저는 그 짧은 한마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이 다시 연결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때마다 생각합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나는 너를 알고 있어.”
“나는 너를 기억하고 있어.”
“너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야.”
이러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소년의 이름은 소중하게 불러야 합니다. 이름을 틀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다른 지칭으로 쉽게 대신하지 않으려고 해야 합니다. 어른에게는 사소한 실수일 수 있지만, 그것이 청소년에게는 ‘나는 잊힌 존재인가?’라는 생각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마음을 얻는 일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신윤민 요셉 신부 |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