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고통과 아무에게도 꺼내놓지 못한 죄, 아픔을 품고 살아갑니다. 고통의 신비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하는 것이지만, 아픔으로 끝나는 기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모든 아픔의 기저에 있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되새기게 합니다.
사실 저는 어린 시절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은 약속을 지키셨지만 저는 지키지 않았고, 이것이 한동안 제 죄의식의 근원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겨울에 어머니가 급성 뇌출혈로 긴급히 수술을 받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봄이 되고 어머니는 퇴원하셨지만 가족의 상황은 여러모로 예전 같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해 성소주일에 신학교를 방문하게 되었고, 늦은 오후 신학교 성당에 혼자 앉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엄마 살려 주시면 나중에 커서 수녀원에 가겠습니다.’라고요. 그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오던 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제 기도를 직접 들으신 것만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었거든요. 이게 무슨 아픔이냐고요? 네, 어머니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만 저는 결국 수녀원에 가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사실 이 기도는 제가 서른이 훨씬 넘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저보고 당장 입회해야 한다고, 그게 네 운명이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동시에 하느님에 대한 죄의식도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셨고, 이제 저만 약속을 지키면 되는데, 제가 선택하지 않고 도망 다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계약(?)을 위반한 건 저니까, 불편한 마음이 계속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청년성서모임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도 건강이 좋지 않아 적당히 힘들이지 말고, 연수만 마치고 나오자고 생각하던 차에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찰할 때까지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바로 이 사건, 하느님과의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저도 모르게 고백한 것입니다. 제가 말하면서도 ‘이 말이 왜 나오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그 순간 제 마음속에서 들린 아주 작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였습니다.
“괜찮아, 로사리아.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니란다.”
이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서 떨림이 올라옵니다. 주님은 제가 죄의식 안에 갇혀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옭아매고 책망하며 불편해 할 뿐이라는 것을, 그분께서는 제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깨닫게 하시고 저를 자유롭게 만드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고통에 아파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으로 고통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해주신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박지혜 로사리아 | 대학교수, 성가복지병원 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