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교회 사람들 | ‘한국 교회와 우리 문화 톺아보기’를 올해의 주제로 삼은 서울주보의 새로운 코너 ‘초대교회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순교자나 성인뿐만 아니라, 초대 한국 교회와 함께했던 다양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K톨릭의 토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느껴보세요!
충청도 홍주 출신 복자 박취득 라우렌시오의 기록은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나옵니다. 관장이 공범자를 대라고 하자 그는 이미 참수당한 지황의 이름을 대며 자기도 죽겠다고 대답합니다. 관장이 죽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 좋으냐고 묻자, 그는 “천주께서 제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건만, 제 죄가 무수하여 죽어 마땅하다.”고 대답합니다. 관장이 무슨 죄를 범했느냐고 물으니, “십계를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고 대답했지요.
다음 신문 때 관장은 집게로 살을 집어 뜯게 했고, 세 번째 신문에서 국법을 어기면서 무슨 이익을 얻으려느냐고 추궁하자 그가 대답합니다. “임금님은 육체의 임자가 될 수 있어도 영혼의 주인은 천주뿐이십니다. 그분이 죽은 뒤의 상과 벌은 아무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죽는 것이 제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요,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새로 관장이 바뀌고 나서도 박취득이 배교의 뜻이 없이 더욱 견결한 태도로 신앙을 증거하자, 관장은 그를 악랄한 고문으로 유명했던 해미 군영으로 보내버립니다. 그곳에서 그는 더욱 악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배교하고 국왕께 순종하겠다고 다짐하였으니, 너도 배교하라는 다그침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했든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집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여러 달 동안 잔혹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그를 알몸으로 진흙탕 속에 던져 밤새 추위 에 떨며 비를 맞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씁니다. “어머니, 봄과 가을은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고, 세월은 부시로 치는 돌에서 튀는 불똥과 같이 잠깐 만에 스러집니다. 특히 조심하셔서 천주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십시오. 제가 옥에 갇힌 지 두 달쯤 되어, 어떻게 해야 천주의 은총을 입을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잠결에 십자가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얼핏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16번 이상 신문을 받았고, 그가 맞은 곤장은 1,400대가 넘었습니다. 8일간 물 한 방울 못 마시게 한 일도 있었고, 그가 죽은 줄 안 옥사장이 옷을 벗겨 밖에 내던졌지만,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다시 매질을 당해 의식 없이 옥에 던져진 그는 몇 시간 뒤 혼자 일어나 감방으로 들어가 누웠지요. 그의 상처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깨끗해진 상태였습니다. 무슨 귀신에라도 홀린 듯 무서워진 옥사장이 마침내 새끼로 목을 졸라서 그를 죽였습니다. 이것은 1799년 4월 3일(음력 2월 29일) 오전 11시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30세였습니다. 그는 18개월 동안 날마다 참혹한 고문을 당했어도 천주를 향한 그의 뜨거운 마음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여러 진술 중에 인생이 아침 이슬 같다고 한 말, 계절은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고 부싯돌의 불똥처럼 스러진다는 표현이 이상스레 긴 여운을 남깁니다. 그는 그 너머에서 지고의 빛으로 빛나던 천국의 영광을 분명히 보고 느꼈던 것이겠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민 베르나르도 |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