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톨릭: 영화 | 서울주보는 2026년을 맞아 K톨릭 특집을 선보입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 문화, 신앙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고유하게 빚어낸 빛나는 가치를 스스로 바라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중 K톨릭 영화칼럼은 한국 문화를 잘 담은 우리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와 교회를 바라보며 성찰을 이어가는 코너입니다.
기억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 영화 <오마주>, 2022, 신수원 감독 -
폐관을 앞둔 낡은 극장. 전기마저 끊긴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틈으로 햇빛이 쏟아집니다. 주인공 지완은 창고에 버려진 극장 홍보용 모자에서 필름 조각을 발견합니다. 모자에 둘러져 있던 필름을 조심스레 풀어 빛을 향해 들어 올립니다. 어둠 속 장면이 수십 년 만에 다시 빛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영화 〈오마주〉의 지완은 흥행 실패를 거듭하며 자신의 영화 인생을 의심하던 중년 감독입니다. 그는 한국 영화사 초창기 한 여성 감독의 작품을 복원하는 작업을 의뢰받습니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그 감독은 지완이 마주해야 할 그림자였고, 다시 걷게 하는 빛이었습니다.
‘오마주(hommage)’는 흔히 존경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인용하는 기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뿌리는 더 깊습니다. 그 뜻에는 “당신을 기억하며 당신이 남긴 삶을 이어가겠습니다.”라는 서약이 담겨 있습니다. 모방은 형식을 가져 오지만, 오마주는 그 사람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의 고통과 열망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으로 살아냅니다.
인공지능이라면 필름을 훨씬 빠르고 선명하게 복원할 것입니다. 흩어진 자료를 찾아내고 손상된 영상과 음성을 정교하게 되살리겠죠. 그러나 지완은 몸이 무너지고 가족과의 관계가 흔들리는 순간에도 물러서지 않고 그 어둠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기억은 정보가 아니라, 온몸으로 겪어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은 무엇이 남아 있는지 찾아주지만, 무엇을 끝까지 기억해야 하는지는 선택하지 못합니다. 기계는 기억을 저장하지만, 인간은 그 기억을 살아냅니다.
과거를 찾아 나선 지완은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여성 감독의 사라진 시간을 더듬으며 자신의 꿈과 마주합니다. 타인의 삶을 복원하려던 길에서 자기 삶을 되찾은 것입니다. 누구를 기억하고 누구의 뜻을 이어가느냐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기억은 지나간 일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사랑을 오늘의 삶으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 시대, 기억한 것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질문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지완의 손에 들린 낡은 필름은 빛을 통과하며 다시 살아 있는 장면이 됩니다. 오마주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가장 숭고한 다리입니다. 그 다리의 이름은 기억이며 사랑이고 복원입니다.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고, 그가 남긴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뜻을 나의 삶으로 이어가는 것. 그것이 오마주입니다.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 |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