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묵주기도 중에 빛의 신비를 가장 좋아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고”,(요한 1,14)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이 누구이신지 알려주셨으며, 우리가 계속해서 그분을 기억할 방법을 가르쳐주신 중요한 장면들을 묵상할 수 있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빛의 신비를 기도할 때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스스로 육신을 취하시어 인간이 되셨다는 강생(降生, incarnation)의 신비가 깊이 와닿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제멋대로인 우리에게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해. 나는 이런 하느님이야. 언제나 함께 있단다. 기억하렴.’ 하고 알려주신 것일까요? 결국 강생은 그분께서 지금 여기, 바로 우리 곁에 같이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하고자 보여주신 사랑의 신비가 아닐까요?
제가 주님의 현존을 느꼈던 순간은 다소 의외의 시간과 장소였습니다. 몇 년 전 출근길이었습니다. 그날은 수업이 오후에 있던 날이라 조금 여유 있게 타고 가던 버스가 마침 여의도환승센터에 정차했을 때였습니다. 그날따라 눈부시게 밝은 햇살이 제 바로 옆, 비어 있는 의자에 한가득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제 옆자리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밝은 빛 한가운데에 마치 빛이신 예수님께서 앉아 계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내 옆에 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자리는 피곤하면 기댈 수도 있고, 기쁠 때는 웃으며 같이 수다를 떨 수 있고, 슬플 때는 이어폰을 나눠 끼고 같이 슬픈 노래 들으며 훌쩍거릴 수 있는 바로 제 옆자리였습니다.
한 번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예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는 자리를 더 자주,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한가운데 자리에, 강의실 맨 앞자리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그곳에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요. 그분은 제 마음속에, 제 옆에, 제가 만나는 사람과 저 사이에, 모든 곳에서 모든 순간 저와 동행하는 분이셨습니다. 지금껏 제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특히 미사 중 성체를 모시고 나면 제 마음 깊이 내려오신 예수님을 느낍니다. 그리고 몇십 년 동안 성체를 모시며 살아왔으니 그 성체가 진짜 제 살과 피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몸은 확실히 예수님을 모신 성전이자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이 아닐까요? 여전히 종종 주님을 잊고 제멋대로 살아가기는 하지만, 하루에 한 번이라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 곁에,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순간순간 그분을 의식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박지혜 로사리아 | 대학교수, 성가복지병원 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