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은 골라서 뽑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을 살아갈 때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의 삶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선택은 단순하게 뽑는 행위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선택의 앞과 뒤에는 조건과 의미들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책임과 영향력도 발생합니다. 특별히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선택은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의미와 책임에 직면하도록 요구합니다. 사랑의 선택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필수적으로 상호 선택을 요구합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사랑의 관계입니다. 결코 일방적으로 깊어질 수 없으며 선택과 응답으로 계속 발전하면서 깊어져야 하는 관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하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임금이 보낸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임금은 진노해 군대를 보내 그들을 처단하고 고을을 불살라 버립니다. 이제 고을 어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초대에 응했으나 마땅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왔던 자들은 쫓겨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 이야기의 끝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하느님의 부르심은 초대입니다. 하느님의 초대를 우리는 사랑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어 잔치를 마련하시고 여기에 초대하시며 기다리십니다. 이 잔칫상에는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 마련된 음식들이 있고 그 밖의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면 됩니다. 하지만 응답에 앞서 우리는 그 초대의 의미를 헤아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사랑의 잔칫상에는 깊은 의미들이 내재해 있습니다. 그 잔칫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당신 자신을 바치신 구원의 잔칫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초대는 결코 가벼운 의미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사랑의 무거움과 구원의 간절함이 녹아 있는 초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자들이 쫓겨난 것은 이런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초대에 맞갖은 삶으로 응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비록 부족하고 죄 많은 우리이지만,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그 사랑의 초대에 희망을 두고 마음을 다해 계속 응답한다면, 하느님과 우리의 사랑의 관계는 분명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김문희 아우구스티노 신부 | 서울성모병원 영성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