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대의 영성 |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청년을 우리의 손님으로 맞이하는 자리입니다. 이 특별한 만남을 준비하며 ‘환대’의 정신을 여러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영성·구약·신약·철학·인간학·교의·유교·불교·베네딕토 수도 전통, 아홉 가지 영역을 통해 환대가 지닌 풍성한 의미를 차례로 조망합니다. 낯선 이를 기꺼이 맞아들이는 일이 어떻게 신앙의 실천이 되고 참된 만남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개막까지 1년 남짓 남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대략 40~50만에 달하는 청년들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별히 서울대교구의 신자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이분들을 맞이하고 환대를 해야 할까요?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모든 행사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초대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혼인 잔치”(마태 22,1–14; 25,1–13; 루카 14,15–24; 묵시 21,9–10)를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고 현재화(現在化)하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참조)라고 선포하시며 파스카의 신비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가져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비체요 성사(聖事)이기에 하느님 나라의 혼인 잔치가 이 세상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짐은 교회의 칠성사이며, 성체성사(Eucharistia)는 그 절정을 이룹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은 청년 시절 7남매를 홀로 키우는 누나를 도우며 살다가 굶주리는 어린 조카를 위하여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복역하며 마음과 영혼이 피폐해지고 흉포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개과천선하여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푸는 시장(市長)이 되고 자기 자신을 끝까지 죄인(罪人)으로 처벌하려는 냉혹한 자베르 경감에게 자비(慈悲)를 베풀어 살려주기까지 하였을까요? 한 인간의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가능했습니까?
아마도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미리엘(Bienvenu Myriel) 주교님이 장발장을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저녁 식사를 베풀고 잠자리까지 제공하였는데도 장발장이 이를 저버리고 훔쳐 간 물건에 대해 “은수저는 내가 장발장에게 준 것이고, 더불어 이 은촛대까지도 주었는데 왜 안 가져갔소!”라고 했던 환대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장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한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永罰)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것이요.”
이 저녁 식사는 바로 성찬례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미리엘 주교님이 장발장에게 준 은촛대, 은수저는 제대(祭臺)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은수저, 은식기, 은촛대를 장발장에게 주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서 불안과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청년세대를 비롯해, 흔히 “금수저와 흙수저”로 비유되는 양극화와 경쟁 사회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가 위로와 희망을 전할 수 있는 길을 비추어주지 않을까요?
흙수저와 금수저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아우르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은수저의 길, 은수저의 의미를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내년 8월, 서울에 오는 전 세계의 청소년들을 우리 가정 안에 극진한 손님으로 모시고(Home Stay) 지극정성으로 환대하며 “너희는 …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라고 하신 예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는 우리 각자가 되어 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구요비 욥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