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톨릭: 도서 | ‘서울주보는 2026년을 맞아 K톨릭 특집을 선보입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 문화, 신앙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고유하게 빚어낸 빛나는 가치를 스스로 바라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중 K톨릭 도서칼럼은 한국 교회만의 독특한 특징을 진단하고, 성찰을 이어갈 수있는 도서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회칙 〈고귀한 인류〉는 인공지능 기술로부터 인간 존엄성을 어떻게 수호할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회칙에 따르면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하느님의 지혜를 인간의 지혜로 축소하거나 환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능력, 질병, 노년, 고통, 취약함 등 인간의 ‘한계’를 바로잡아야 할 결함으로 여깁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이 ‘한계’를 통해서 성숙해야 한다고 확언합니다. 따라서 인공지능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한계’가 극복될수록, 인간의 ‘한계’를 더 깊이 인식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곽진상 주교님께서 번역하신 앙리 드 뤼박 추기경님의 《역설들》(가톨릭출판사, 2025)은 인간 ‘한계’의 신비를 신앙의 차원에서 훌륭하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교 역설의 신비는 이성의 틀에 갇힐 수 없는, 곧 이성을 넘어서는 초월적 특성이 있습니다. 역설은 논리에 반하지 않으며, 논리 법칙은 철저히 지켜지지만, 그 범위를 벗어납니다. 또한 변증법처럼 찬성에서 반대로의 교묘한 전환이 아닙니다. 역자인 주교님은 신앙이 가지고 있는 역설성을 돌보고 지키는 것이 신학의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하십니다..
드 뤼박 추기경님의 《역설들》에 포함된 여러 가지 주제 중에서 ‘고통’은 인간의 ‘한계’ 너머로 초대받는 신앙의 초월적 의미를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은 단순해야 합니다. 고통에서 도망쳐서는 안 되고, 고통을 계속 가지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고통을 즐기지 않으면서도 사랑해야 합니다. 고통 없이는 기도나 사랑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해서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 안에서 신앙이 성숙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통에 담긴 역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신 장면에 머물러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 죽음을 향해 가는 걸 지켜만 보고 계셨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라는 외침과 더불어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라는 고백을 통해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는 역설의 신비를 완성하셨습니다.
성공회 사제 새라 코클리의 저서 《십자가: 사랑과 배신이 빚어낸 드라마》(비아, 2024)는 성서 안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역설적 상황의 의미를 밝혀냅니다. 특히 십자가라는 비참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사건 속에서 사랑의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을 역설의 개념으로 풀어냅니다. 2,000년 전 한 이스라엘 남자의 죽음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비참함, 절망, 두려움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설적 상황을 찬찬히 펼쳐내 보입니다.
한창연 모세 신부 | 성바오로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