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4년, 임신 36주에 낙태 수술을 받았다는 한 여성의 브이로그가 공개되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명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에 공분했고, 이후 아이가 살아서 태어난 뒤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드러나 결국 의료진은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최근 9월 16일, 정부는 임신 9주 이내에 사용할 수 있는 낙태약 ‘미프진’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초기 2년간은 병원에서 처방, 조제하고 이후에는 약국 조제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합니다. 의료계에서는 과다 출혈과 불완전 유산 등의 위험을 지적하며 충분한 의료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종교계도 강한 반대 의견이지만, 정부는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을 보장하려는 조치라며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임신 9주의 아이와 36주의 아이는 서로 다른 생명입니까? 한 살의 나와 지금의 나, 예순 살의 나와 여든 살의 내가 동일한 사람이듯 임신 9주의 아이와 36주의 아이 역시 동일한 과정에 있습니다. 발달 정도와 생존 능력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가 생명의 존엄성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인간 생명을 임신하는 순간부터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가르침에 교회가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항의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임신과 출산 앞에서 두려워하고 고통받는 여성의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기에, 여성과 아이의 생명을 함께 지킬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슬픈 마음으로 또다시 묻습니다.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낙태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정말 여성을 지켜주는 일입니까?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문화를 바꾸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진정으로 여성을 보호하는 길 아닙니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하고,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것이 모든 인권을 보호하는 길 아닙니까? 미성년자에게 낙태약을 처방하는 문제를 논의할 것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과 성에 따르는 책임을 가르치는 교육이 오히려 더욱 절실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의학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곧 도덕적으로 허용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생명의 죽음에는 분노하면서도 다른 생명의 죽음에는 무감각해지는 사회, 나의 자유를 위해 생명을 죽이는 낙태를 ‘임신 중지’라는 표현으로 가볍게 미화하는 사회, 생명의 가치를 발달 정도에 따라 달리 판단하는 사회의 모습이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방종우 야고보 신부 |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