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이렇게 살다가는 죽어서 지옥 불로 떨어지겠구나.’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박사과정을 시작한 첫해에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박사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경쟁적이고 서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그 당시의 제가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본받고 싶은 인품의 지도교수님과 마음 맞는 동기와 선후배들을 만났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예전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런 좋은 점보다는 내 힘으로 이 경쟁에서 이겨서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만 컸던 시기였습니다. 당연히(?) 하느님과도 멀어졌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도 가지 않고, 내가 혼자서 다 해낼 수 있다는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림 시기가 되었고 문득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고 나만 잘났다고 여기며 살다가는 지옥 가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탄을 목전에 두고 오랜만에 판공성사를 보고 미사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딱!’ 그 주 서울주보에 나온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 단체’의 주소와 연락처 목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정기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면, 스스로 조금이나마 경쟁심에서 벗어나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았고, 아무리 교만한 저라도 하느님께서 지옥까지 보내지는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마침, 딱!’ ‘성가복지병원’이었고, 봉사자 담당 수녀님이 ‘마침, 딱!’ 할 일이 있으니 바로 오라고 하셔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봉사일이 2013년 1월 12일이었으니 벌써 13년이 넘었습니다.
성가복지병원은 정부 보조금 없이 가난과 질병으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가소비녀회에서 운영하는 무료 병원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의 접수를 돕고 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오후에 가는데, 13.5일을 제 마음대로 살다가 0.5일 누군가를 돕는다면서 착한 척하는 건 아닌가 반성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봉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건 그 시간을 통해 하느님께서 제게 주시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환희의 신비를 묵상할 때면 저를 봉사로 이끌어 주신 성탄이 가까웠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마침, 딱!’이 겹친 것은 하느님의 뜻과 제 선택이 같은 방향을 가리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도록 이끌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옥 불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주님은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가 지옥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기쁘게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미리 사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에서 행복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박지혜 로사리아 | 대학교수, 성가복지병원 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