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칼리가 글을 쓰고 모니카 바렌고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의 표지에는 빨간색 멜빵을 매고 있는 곱슬머리 남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남성의 이름은 나다입니다. 나다 씨는 허리가 긴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있는데, 강아지와 남성은 서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습니다. 서로가 있기에 더 이상 바랄 것 없다는 듯한 평온함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나다 씨의 등에 날개가 돋아납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다 씨는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고 친구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어보지만, 누구도 마땅한 대답을 해 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철물점 주인은 자신이 날개를 잘라줄 수 있다며 가위를 꺼내고, 사장님은 일을 하려면 당장 그 날개를 뜯어버리라고 호통을 칩니다. 나다 씨는 외로웠을까요? 갑자기 돋아난 날개가 원망스러웠을까요?
다행스럽게도 나다 씨의 주변에 나다 씨의 날개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당신은 아주 멋진 날개를 가졌군요!”라고 말해준 순간, 나다 씨는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 수도 있을 만큼 가벼운 기분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의 날개가 아름다운 무지갯빛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거추장스럽고 짐처럼 느껴졌던 그 날개가 이제는 나다 씨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누군가 자신을 좋게 평가해 주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타인의 긍정적인 평가에 귀를 열 수 있었고,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의 등에도 날개가 돋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날개는 가볍고 어떤 날개는 무겁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날개가 있는가 하면 누구나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날개도 있습니다. 내가 의식하는 무엇이든 날개일 수 있습니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도, 몸에 생긴 장애도, 갑자기 짊어지게 된 삶의 무게도 처음에는 그저 당황스럽고 피하고만 싶어집니다. 특히, 나의 아픔을 다른 이들이 공감해 주지 못할 때 더더욱 날개를 꾹꾹 눌러 접어 감추게 됩니다. 보이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되지 않을까 바라면서요. 하지만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오롯이 견뎌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지혜와 통찰의 힘이 있다는 것을. 언젠가 아름답게 빛나는 무지갯빛 날개를 자랑스럽게 펼칠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더 인내해 보았으면 합니다. 반드시 찾아올 그날을 향해 한 번 더 힘을 내어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임여주 아녜스 |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