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에서 만난 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이 친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을 겪었고,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딸을 폭행했고, 결국 9살에 아버지와 살기 힘들어 할아버지 집으로 갔지만, 할아버지에게도 버림받아 13살이라는 나이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이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 아이에게 남자라는 존재는 자신의 몸을 탐하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아지트에 왔을 때 이 친구는 27세 남성과 동거 중이었죠. 처음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자신이 평생 겪었던 남자와는 다른 모습으로 대해주는 어른들을 만나며 서서히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2~3달에 한 번씩 오던 중 어느 날 새벽 늦게 전화를 걸어와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밤을 새워 정성을 다해 상담을 했고, 다음 날 아지트에 온 이 친구는 엄청난 결정을 내렸습니다. 더 이상 유흥업소에서 일하지 않고,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겠다는 결심이었죠. 그래서 저희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3개월 동안 월 30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본인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동거 중인 남성의 집에서 나와 자립을 준비하면, 이후에도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말이죠. 놀랍게도 이 친구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매주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집을 깨끗이 청소하며 살고 있었고 키우는 강아지도 건강하고 청결하게 돌보며 매일 1~2회씩 산책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언니들과 마담이 다시 연락해 좋은 조건으로 유혹했지만,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아지트에서 만난 어른들 덕분에 돈은 부족해도 떳떳하게 사는 것이 더 마음 편하고 좋아서 넘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자립 준비를 성실히 하고 있죠.
연말 보고서 작성을 위한 인터뷰에서 이 친구가 한 말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험한 사회에서 악한 어른들 틈에서만 살아 희망이 없었는데, 아지트에서 어른들을 만나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고 사랑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위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이 친구보다 덜한 상황에서도 세상의 달콤함에 쉽게 넘어가 비행과 범죄로 빠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런데 ‘왜 이 친구는 가능했을까?’ 저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세상에는 하느님의 소중한 씨앗들이 있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영이 강한 사람들, 죄의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고, 의롭고 선하게 살고자 갈망하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면 더욱 빛나는 영혼들이죠. 저는 아지트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이 예수님을 만나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하느님을 알기 위한 토대가 잘 다져져야겠죠. 그래야 주님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닮은 영혼으로 거듭날 테니까요.
“청춘의 욕망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과 함께 의로움과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십시오.”(2티모 2,22)
은성제 요셉 신부 |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서울A지T)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