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시오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우리는 부부로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34년, 시간으로는 297,840시간을 훌쩍 넘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사랑을 맹세한 혼인 서약, 혼인 반지를 나누며 서로를 바라보던 그윽한 눈빛, 감동적인 그 순간은 마치 영화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 올리버와 제니퍼의 그것처럼 영원히 빛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처럼 빛나던 시간은 찰나처럼 지나가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맺어주신 짝인데, 달라도 왜 이렇게 다를까요? 성격, 식성, 좋아하는 것, 취미 등 어느 것 하나 맞는 게 없는데 어떻게 34년을 함께 살아왔는지 그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싸움의 기술도 나날이 늘어 어느덧 서로에게 상처는 주되 큰 싸움은 피하는 법까지 터득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비 온 뒤 고인 웅덩이처럼, 언제라도 휘젓기만 하면 흙탕물이 되어버릴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일상의 반복인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본당 부부님께서 ME 주말 모임을 권해주셨습니다. ‘좀 다투긴 해도 남들도 이 정도는 다투며 살지 않나?’ 왜 우리 부부에게 ME를 권하시는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아이들 키우느라 단둘이 여행 한 번 가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온 터라, 2박 3일 여행가는 마음으로 편하게 ME 주말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날 ME 주말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날 우리를 초대하신 분은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이웃을 통해 오신 예수님! 주말 체험 이후 저희 부부는 의견이 다를 때 일단 멈추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몇 년 전 저희 부부는 두 달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그 길에는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모습의 순례자들로 가득했습니다. 한 순례자는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배낭에 한가득 짐을 넣고 걷다가 멀리 가지 못하고 결국 꼭 필요한 짐만 남기고 전부 버리는가 하면, 어떤 순례자는 돈을 아끼느라 엄마의 등산화를 빌려 신고 걷다가 결국 엄지발톱이 빠져 도저히 걸을 수 없어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이 주님께 가는 순례길이구나!’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제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 명확해졌습니다.
이기심과 교만, 세속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주님께 다가가는 데 발목을 잡고 있었고,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그물을 던져버렸듯 저 역시 그것들을 버려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요. 달라도 너무 다른 아우구스티노의 겸손과 검소함은 저의 교만한 마음을 다스리도록 주님께서 손수 마련해 주신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거룩한 혼인성사를 완성시키고자 친히 최고의 선물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립니다.
신상훈 아우구스티노, 추준영 마리아 | ME 주말 체험자 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