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여기 로마까지 와서 교황님도 만나는 여정이라고 들었는데요, 이렇게 고생하면서 소화하는 일정이 저희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은 지난 7월 28일부터 1주일간 열렸던 로마 젊은이의 희년(일명 1004 프로젝트) 순례 중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자마자 ‘마음에 울림을 주는 성령님의 지혜에서 나오는 답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예수님, 저와 이 청년들을 도와주십시오.’ 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 답변을 반드시 해야 하는 자리가 또 생겼죠. 바로 교황님과의 폐막 미사 참석 대신 환자가 되어서 안정을 취해야만 했던 34명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환자인 이 친구들이 몇 시간을 걷고, 밤새 들판에서 자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교황님과 함께하는 메인 이벤트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친구들에게는 얼마나 기운 빠지고 실망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여정 전체가 실패했다고 느낄 수도 있는 상황 아닙니까? 그러나 저와 친구들은 미사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크게 느꼈습니다. 미사 전부터 저는 예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계심을 느낄 수 있었고 미사 내내 그분의 현존을 느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어떤 청년들은 눈물을 글썽이거나 흘리기도 했고, 또 ‘지금 이 순간을 잊어버리기 싫어요.’라며 미사가 끝나자마자 노트를 꺼내서 정신없이 무엇인가 적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답변을 반드시 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그 청년들에게 살아있는 생명수이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은 깨닫고 살아 내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니다.’는 법칙이 진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로마에 와서 성당이나 강당 바닥에서 난민처럼 잠을 자고, 제대로 된 샤워 시설도 없이 야외에서 찬물로 씻으며, 강한 햇빛 속에서 목마름과 더위에 지쳐 걷다가 잠시 그늘에 앉아 쉬는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감사하게 되는 삶. 목이 타는 가운데 받은 바우처로 시원한 물을 마실 때 느끼는 기쁨. 이것이 바로 탈출기에서 모세와 백성들이 겪었던 ‘광야의 삶’ 체험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삶과 결합하여 내 안에 들어올 때 비로소 말씀은 죽은 글자가 아니라 내 영혼에 은총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 여정을 통해 ‘인생은 광야를 지나가는 여정’이지, ‘여러분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영원히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깨닫길 바랍니다. 잠자리, 씻는 것, 물, 음식 등이 풍족하진 않더라도, 꼭 필요한 것들을 넘치지 않게 채워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걷는 길이 바로 은총의 광야길이며 인생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에 넘치게 부유하거나 사치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의 은총으로 교만하지 않게, 부족함 속에서도 각박하거나 인색하지 않게, 불평과 원망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광야의 여정’이며, 그 여정 속에서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주님을 믿으며 걸을 수 있습니다.”
그날 그곳에서의 나눔이 그 청년들 가슴에 살아 숨쉬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은성제 요셉 신부 |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서울A지T)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