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바치는 가장 큰 사랑의 행위입니다. 신해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땅에서 일만여 명이 순교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증거를 기리기 위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1984년 한국을 방문하시어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 정하상 바오로를 포함한 103위 순교자를 시성하셨습니다. 이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윤지충 바오로를 포함한 124위 순교자를 복자품에 올리셨습니다. 이 거룩한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복음적 요청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여기서 “누구든지”란 열두 제자뿐 아니라, 주님을 믿고 따르려는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이는 자기 비움의 삶으로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자기 비움의 삶을 살도록 이끌며 양성하셨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 희생과 죽음을 껴안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많은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희망의 순례자적 삶입니다. 1독서의 말씀처럼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지혜 3,4) 있습니다. 그들은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라 자신의 목숨을 바쳐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만약 제자가 매일 주어지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 편안한 삶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은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당장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철학을 말하고, 소비문화를 부추깁니다. 많은 이들이 그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시선은 항상 하늘을 향해, 주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우리도 복음의 요청에 귀 기울이고 응답할 때, 십자가와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우리의 삶을 이 세상에서 빛을 내는 부활의 삶, 사회와 가정에 짠맛을 더하는 삶으로 방향 짓게 됩니다. 순교자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향한 사랑을 삶에서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매일 주어지는 여러 어려움과 죽음의 체험 앞에서 작은 순교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제자로서의 삶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하는 자아 포기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7)
인만희 마누엘 신부 | 글라렛 선교 수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