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제가 신앙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게 된 건 대학을 졸업한 이후였습니다. 20대 초반부터 어머니의 몇 차례 시도와 권유가 있었지만, 놀기 바빠 예비자 교리를 받거나 빠짐없이 미사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대학 졸업 후에야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신기한 건 그때는 주변에서 아무도 저를 전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루는 예비자 교리를 받던 제게 신부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왜 세례를 받으려 하세요?” 곰곰이 생각하다가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때문에요!” 취업처럼 피부에 와닿는 고민이 많은 시기이기도 했지만,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덕이 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제게 큰 위로를 주신 분입니다. 저의 조용한 삶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세월호 참사였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과정도 충격이었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내가 알던 대한민국이 맞나.’ 의심케 했습니다.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는 마음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그 반대편의 목소리도 너무 컸습니다. 책임을 부정하고, 아픔을 조롱하고, 참사를 정치화했습니다. 그 모습을 매일 지켜봤던 제 마음도 함께 멍들었습니다. 그때 교황님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셨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조언을 물리치고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타나셨습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하시며 곡기를 끊었던 유가족의 손을 잡으셨고, 우리 사회가 온전히 품지 못한 아픔을 다독여주셨습니다. 모두가 ‘네 탓’을 하던 그때, ‘내 탓이오.’라는 문장이 광화문에 울려 퍼졌고, 당시 비신자였던 저도 잊지 못할 위로를 받았습니다.
상식과 비상식이 뒤섞이고, 사회가 혼란에 빠졌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나의 ‘기준’ 같았습니다. 슬픔이 있는 곳에 위로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심어놓는 것이 ‘상식’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보내시어 병들어가던 우리 사회를 보듬으신 건 아닐까?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황님을 통해 위로 받았던 기억이 저를 하느님께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제 삶도 변했습니다. 약자를 아끼시는 교황님의 삶은 제 안에 고요히 존재했던 신앙의 씨앗을 움트게 했습니다. 가장 소중한 변화를 이끌어주셨던 교황님은 몇 달 전 선종하셨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아주 중요한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세속적인 욕망이 움트고,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 기준을 잡지 못하고 혼란해질 때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제 마음 속 이정표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늘나라로 떠나신 교황님을 추억하며,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한 문장이 교황님이 제게 남기신 유산이며, 하느님의 선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수진 유스티나 | JTBC 뉴스룸 앵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