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해! 치료해 내란 말이야!” 온갖 오물 냄새와 술냄새가 경식의 코로 훅하고 들어왔다. 경식은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분노가 가득한 눈이었다. 누군가의 분노를 마주하면 피하기 마련이지만, 경식은 오히려 더 오래 그 분노를 바라보았다. 분노가 걷히고 깊숙이 아픔이 보였다. 그랬다. 경식은 ‘요셉의원’을 찾는 환자들에게서 늘 이렇게 아픔을 발견해 내곤 했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들의 아픔을 보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가 된 이후부터 이런 바람은 돈 앞에서 통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피를 철철 흘려 실려 온 환자도 원무과에 접수하지 않으면 지혈조차 해 줄 수 없었다. 영양부족으로 정신을 잃은 아이도 부모가 돈을 내지 않으면 이마 조차 짚어줄 수 없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돈이 막혀 있었다. 이러려고 의사가 된 게 아니었다. “‘나는 환자와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주님!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현실에서는 무의미합니다. 환자를 이웃으로, 친구로 생각하며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경식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하나 모아 길을 만드셨다. 동료 의사와 뜻있는 이들의 도움, 김수환 추기경님을 비롯한 가톨릭교회의 도움으로 마침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요셉의원’이 세워진 것이다.
“술을 먹고 오면 제대로 된 치료가 힘들어요. 술이 깨면 그때 치료해 드릴게요.” 그제야 남자는 멱살 잡은 손을 풀었다. “마지막 식사가 언제예요? 찬이 많지는 않지만 일단 밥 한술 뜨세요.” 남자는 요셉의원 한편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요셉의원’이 세워지자마자 그야말로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만큼 가난한 환자가 많았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경식은 대부분,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환자에게 치료한다고 피를 뽑고 검사부터 했다는 게 죄스러웠다. 그때부터 ‘요셉의원’은 환자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다. 가난한 이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약이며 밥까지 챙겨주었으니, 병원은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랐다. 경식의 멱살을 잡는 건 술 취한 환자뿐만이 아니었다. 제약 회사는 당장 돈을 갚지 않으면 병원의 법적 대표인 김수환 추기경님을 고소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고 전기세와 수도세도 내지 못해 끊길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번에도 돈이 환자와 경식 사이를 막아서고 멱살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의사를 의사로서 살 수 있게 해 주는 환자가 여기 있는데 가긴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환자와 의사 사이엔 돈이 아니라 사랑이 있어야죠. 그렇죠, 주님?’
서희정 마리아 | 작가
덧) 재정적으로 힘들 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고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봉사자들이 함께했다. 선우경식은 2008년 4월 18일 선종하기 전까지 21년 동안 ‘요셉의원’과 함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