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성당의 데레사 님. 그분은 지금 지구에선 만날 수가 없습니다. 1936년 11월, 강원도 양양의 사천리에서 태어나서 2019년 2월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일곱 아들을 남겨 두셔서, 아드님들이 어머니 1주기에 맞춰 글을 남겼습니다. 2020년 2월 22일에 펴낸 〈그리운 어머니〉가 그 책입니다. ‘회고와 추모’의 글인데, 비매품입니다. 저는 인연이 있는 세 번째 아드님으로부터 책을 받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기 시작하고 손에서 한 번도 놓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주 긴 책이 아니기도 했지만, 내용의 아름다움과 진실 때문에 푹 빠졌습니다. 마치 물속의 고기나 흙에서 자라는 풀, 꽃, 나무, 바람과 구름, 별처럼 그리고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의 그 명료한 생명감이 느껴져서 그랬습니다.
모든 아드님들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고가 절절하지만, 제가 밑줄을 그어 가면 읽고 싶고 어디에 마구 퍼드리고 싶었던 건 바로 여섯 번째 아들인 요셉 님의 그리움과 회고였습니다. 요셉 님은 성직자이십니다. 요셉 님은 스물다섯 가지의 기억으로 어머니를 회고했습니다. 그분의 일곱 번째 기억의 제목은 ‘용서가 특기이고 버릇인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요셉이 불량배에게 머리를 다쳤지만 용서했습니다. 남의 자식을 전과자로 만들면 안 된다고. 또 아버지가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가다가 젊은 부부의 승용차에 추돌했습니다. 사고를 낸 젊은 부부를 용서했습니다. 앞날이 창창하다고. 어느 날 동네의 어떤 집 앞에 매어놓은 맹견이 목줄이 풀려 어머님을 무참하게 물어뜯었습니다. 살점이 너덜거렸지만 ‘용서’했습니다. 어머니는 아프지 않았느냐고 묻는 아들에게 “그 순간 십자가 위에 매달리신 예수님 생각이 났어. 예수님께서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어. 예수님의 상처에 저의 고통을 봉헌합니다.” “개 주인에게 뭐라 하지 마라. 그 사람도 놀랐을 것이다. 용서해 주어라.”
요셉 신부님은 사목을 할 때마다 속상하게 하는 신자분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너무 화가 날 때도 있는데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어머니께 상담했습니다. “신부님. 그 사람도 신부님의 어린 양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유산을 일곱 아들에게 상속해 주셨습니다. 많지 않은 농토지만 그래도 나눠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들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유산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왜 없느냐고 하자,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이 유산이시지요!” 하셨습니다. 순간 요셉 신부님은 어머니가 자신들의 유산이라는 걸 깨달으셨습니다.
책을 다 읽고 책 표지에 실린 어머니 데레사 님의 사진을 다시 보았습니다. 짧은 글에 데레사 님의 고난과 수난, 용서의 삶을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밭고랑같이 주름진 얼굴에 깃든 평화를 전할 수도 없어, 그저 송구스럽습니다.
이경자 안나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