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져 갈 때 우리는 초조하고 불안해집니다. 붙잡고 싶은 마음에 허둥지둥하다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실수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실수한 내 모습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은소홀 작가의 동화 《5번 레인》에서 주인공 강나루는 한강초등학교 수영부의 에이스입니다. 여섯 살 때 두 살 터울인 언니와 함께 수영을 시작한 이후 열세 살인 지금까지 나루에게 수영은 삶의 전부이자 꿈이며 미래였습니다. 힘든 훈련도 잘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시합에서 이기는 것이 즐거웠거든요. 가끔은 이기는 것보다 어떻게 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코치님 말씀이 나루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루에게 운동은 꼭 1등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1등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나루는 누구보다 열심히, 혹독하게 훈련했습니다.
그런 나루에게 시련이 찾아옵니다. 푸른초등학교 김초희. 초희는 나루보다 훨씬 늦게 수영을 시작했는데도 기록이 훨씬 빨리 줄었습니다. 늘 4번 레인에 서던 나루가 5번 레인으로 밀려난 것은 초희 때문이었습니다. 나루도 열세 살 치고 팔이 긴 편이었지만 초희의 팔 길이는 남달랐습니다. 초희를 의식하면 할수록 나루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평소보다 못한 기량이 나오기도 합니다. 초희에 대한 반감은 커져만 가고 급기야 나루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자신의 못난 모습에 본인도 크게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던 나루. 처음에는 그저 도망치고만 싶어지지만, 곧 용기 내어 자기 잘못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물속에서도, 물 밖에서도, 떳떳한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수하고, 반성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성장합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못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어른이 있다면 더 힘내서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가, 코치님이 나루에게 해주셨던 것처럼요. 수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메달이 없어도 나루는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이기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가르침을 코치님이 꾸준히 전해주지 않았다면, 나루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순위에 연연하여 더 큰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스스로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배워 나가는 그 고독한 여정에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어른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믿음 위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기 자신과 이 세상에 당당한 사람으로 멋지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여주 아녜스 |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