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에 아버지가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임종 당시 강화도에서 가톨릭스카우트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정에 봉사자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임종하시던 날 오전에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늦게 전화를 드리니 아버지가 아침에 속이 안 좋고 몸을 추스르지 못하겠다고 하셔서 119구조대 차량에 태워 큰 병원으로 모셔왔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안정을 되찾으셨다고 하셔서 하루 이틀 뒤에 퇴원하시려니 생각했는데, 두 시간 뒤에 홀연히 떠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엇이 문제였을까?”라고 묻기보다는 아버지가 떠나실 때를 선택하셨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아버지는 40여 년 전에 위출혈로 위를 일부 잘라내는 수술을 하셨고, 또다시 위출혈로 지난 8월 말 위를 또 절제하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대장 쪽에도 악성 종양이 발견되어 장도 일부 잘라내야 했습니다. 여든넷이라는 나이로 이겨내기가 쉽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40여 년 전에, 수술 후 회복 중이셨던 아버지는 어느 날 누나와 제게 수술 후, 깨어나기 전에 경험하셨던 꿈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루터기에 앉아 크게 숨을 고르면서 아버지는 언덕을 바라보며 평온을 맛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흰옷을 입은 분이 나타나 아버지에게 ‘저 언덕 너머로 같이 가지 않겠느냐?’ 하며 말을 거셨고, 아버지는 같이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때 잠시 남은 가족이 떠올라 뒤를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았는데 그 흰옷의 인물이 사라졌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회복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지난 8월 말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그때 떠나지 않고 마흔 해를 더 사셨기에 여한도 두려움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수술을 잘 마쳤지만, 체력을 되찾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한가위 명절 연휴가 다 지나고 10월 초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나셨나 봅니다.
40년 전에 아버지가 그냥 떠나셨다면, 장남인 저는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됐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떠나지 않은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이 온전히 자립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곁을 지켜주셨던 겁니다. 제가 법적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는 물론, 결혼 대신 수도 생활을 위해 예수회에 입회할 때도, 그리고 사제품을 받을 때까지도 줄곧 기다려 주셨습니다. 수도회 입회로써 저는 자립했다고 생각했지만, 양육시설에서 자라 스스로 서야만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립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빈소를 지키며 비로소 저는 부친 토마스 아퀴나스 님이 남기신 말 없는 유언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즉 자립준비청년들의 곁을 지키는 일을 충실히 하라는 말씀이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깨어있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처럼, 이 청년들을 기다려 주고자 합니다.
박종인 사도요한 신부 | 예수회원, 꿈나무마을 공동체
*자립준비청년: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어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을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