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어느 날, 미사 후 주보에서 《서소문 성지에서 탄생한 44위 성인과 27위 하느님의 종 묵상집》을 필사하는 과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있던 저는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복사한 뒤, 아침마다 하루에 한 분씩 옮겨 적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의 성인을 필사하다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말로 들었을 때와는 달리, 글로 만나는 성인들의 마지막 모습은 표현조차 어려울 만큼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스물한 살,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성인의 이야기는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심문 중 “배교하면 살려주겠다.”는 포장의 회유에도 “만 번 죽을지라도 아버지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의연히 대답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킨 그 말씀 앞에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또 “보지 못한 것을 어떻게 믿느냐?”는 물음에 “시골 백성이 국왕을 보아야만 믿습니까?”라고 지혜롭게 응답하며 하늘만 바라보고 참수형을 받아들인 그 신비는 인간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소문 성지와 절두산 성지 현양탑을 찾아가 한참씩 머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절두산 성지에서 열린 정미연 작가의 ‘무명 순교자를 위한 진혼곡’ 전시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 전시회를 찾던 중, 출구 벽에 작게 쓰여 있던 ‘그림을 그리며 일상이 기도가 되었다.’는 글귀가 제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그래, 순교자의 삶을 노래로 만들어 기도하자. 특히 마지막 순간에 남기신 말씀들을 세상에 전해 드리자.’
집에 돌아오자마자 묵상집을 꺼내 다시 읽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한결같은 믿음으로 고백하신 말씀들을 가사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요즘 20대가 좋아하는 리듬으로 곡을 만들면, 하늘에서도 함께 춤추며 기뻐해 주실 거라는 생각에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성인 김누시아 루치아와 김효임 골룸바 두 분의 삶을 담은 곡이 탄생했습니다. 모든 과정이 너무도 순조롭고 신비롭게 이어졌습니다. 요즘 저는 이 노래를 노인대학, 기도회, 피정 등 가는 곳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어느새 저는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자를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젊은 나이에 불타는 쇠와 참혹한 고문을 견디며 끝까지 신앙을 지켜낸 그 믿음을 노래로 제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묵상집을 펼쳐 한 분 한 분의 삶을 따라 읽으며,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분들의 삶을 노래로 세상에 전하는 작은 종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방승호 님이 작사 작곡한 김누시아 루치아, 김효임 골룸바 두 분의 삶을 노래한 곡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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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호 요한보스코 | 가수(조부모학교 수료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