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어머님께서 당신과 자녀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이뤘던 사연을 들려주셨습니다. 딸이 대학교에 입학한 해의 어느 날 아침에 뭔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언성이 높아졌고, 결국 딸은 그 어머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던지고 냅다 학교로 떠났습니다.
어머님은 평소처럼 10시 미사에 참석하셨지만, 미사 내내 상처받고 화가 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답니다. 마음에 앙금이 잔뜩 남은 채로 성체조배실로 가서 예수님께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떻게 평생을 키워준 저에게 딸아이가 그렇게 무례한 말을 할 수가 있죠? 예수님, 제 딸이 정말 잘못한 거니 오늘 집에 돌아오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저에게 사과하게 해 주세요. 저는 사과를 받아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씩씩거리며 기도했는데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질 무렵,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더랍니다. “네가 딸에게 용서를 청해라. 평생 네가 딸에게 했던 말을 되돌려 받은 것이니 네가 먼저 용서를 청해야 한다.” 그 말씀을 듣고 더 화가 나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한참을 주님께 따졌답니다. 그렇게 다 쏟아내고 난 뒤에야 차분해졌는데, 그때부터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했던 말들이 하나씩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정말로 자기가 어릴 때부터 뿌렸던 말과 행동들을 되돌려 받고 있는 것임을 깨닫고, 성체조배실에서 주님께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저녁이 되어 딸이 돌아오자, 어머님은 딸아이 방으로 가서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아침에 내가 너한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네가 했던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괘씸했는데 성당에 가서 기도하면서 보니 그것은 네가 어렸을 때부터 내가 너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더라. 앞으로도 엄마에게 상처받았던 일이 생각나면 언제든지 얘기하렴. 그러면 그때마다 엄마가 사과하고 용서를 청할게. 엄마를 용서해 다오.” 이렇게 자아를 죽이며 진심으로 사과하자 딸도 진심으로 받아주었답니다. 그 후 딸은 생각날 때마다 상처들을 어머니에게 털어놓곤 했는데, 어떤 때는 친척들이 모두 있는 가족 모임에서까지 얼굴 붉히며 이야기하는 바람에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순간에도 자아를 꺾고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합니다.
이후 눈에 보일 정도로 딸아이의 상처는 회복되었고, 서로의 관계도 회복되었으며 자신을 대하는 딸의 태도도 점점 사랑과 존경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뭔가 인생에서 상의할 일이 생기면 “엄마, 제가 지금 엄마의 지혜가 필요해요.” 하면서 전화로 자매님을 찾는다고 합니다. 엄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도와주는 딸이 되어서 그날 성체조배실에서 예수님과 씨름한 기억이 감사하다고 합니다.
내 자녀가 ‘내 것’이면 인성도, 삶의 지혜도, 축복도 나만큼만 받겠죠. 그러나 ‘예수님 것’이라면 인성도, 삶의 지혜도, 축복도 예수님의 크기로 주실 겁니다. 주님께서 주신 자녀이니 나를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크신 사랑으로 자녀들을 바라보세요.
은성제 요셉 신부 |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서울A지T)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