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는 자신의 생일과 일치하는 축일을 가진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삼는다 했으나 제 생일과 축일을 같이 하는 성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음력 생일까지도요. 또 의미 있는 날이 언제일까를 고민하다가 ‘내 말(語)의 생일’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0월 9일, 성녀 사라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택했습니다.
제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어머니는 제가 처음 말을 하던 때를 회상하며, 말이 안 트여서 좀 늦는다 싶었는데 첫 말이 완전한 문장형이었다는 이야기를 무슨 영웅 설화처럼 들려주었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아이들이 저마다 타고나는 것들이 있어서 때가 되면 자연히 그것이 발현되는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십 대의 어머니 역시 그랬나 봅니다. 아이에게 말을 걸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말을 하는 것으로 알았던 걸까요? 나름으로 짐작해 보건대 한 살 아래 동생을 배고 낳는 과정과 그 아이가 아프다는 데 이르러 제가 다소 뒤로 물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큰 몫을 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문장으로 첫 말을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그 뒤로 집에서 무얼 말하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만 입이 붙어버리기라도 한 건지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도, 선생님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도 의지와 달리 입이 열리질 않았으니까요. 다행히 제 입은 4학년이나 되어서야 조금씩 열렸습니다. 그럼에도 다 큰 지금도 여전히 소통은 어려운 영역이라 여깁니다. 차라리 학술 토론은 괜찮습니다. 제게는 일상어가 가장 어려운 말이고 그중에서 힘든 것은 언쟁입니다. 특히나 그것이 오해 같은 걸로 더럽혀졌을 때 어떻게 그 얼룩을 걷어내고 진실을 밝혀야 하는지 잘 몰라 그런 일에 끼지 않고 외면하면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너 그렇게 고고하냐.”는 반응 아니면 더 더러운 얼룩을 묻히는 식이겠습니다.
제가 첫 말을 완전한 문장으로 구사한 것은 어머니의 뿌듯함과는 달리 말이 묵고 묵어 터져 나올 때가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뱉어진 것일 테고, 그럼에도 말이 어려운 사람이라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거라 여깁니다. 말이든 글이든 언젠가는 열매가 익어서 툭 떨어져나오듯 그렇게 영글고 자라는 게 아닐까요. 말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의 비밀을 발설해 버린 우화는 비밀의 무게와 동시에 말의 무게, 그 날개 달린 말의 ‘뛰쳐나감’이 말의 본성임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은 그토록 전진하려 하는 데다 무겁고 무섭기까지 한 것입니다. 해서 말과 글은 그 무게를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때에 맞게 잘 보내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자잘한 일에는 입을 다물고 필요한 때에 말할 수 있는 것은 용기이면서도 무엇보다 말을 잘 다스리는 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내 입을 뛰쳐나갈 말이 나의 수준입니다. 때로 붙들어 매고 자주 길들이면서 그러다 꼭 필요한 때에 그 말에 세차게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제 영명 축일이 ‘말의 생일’인 까닭입니다.
황유지 사라 |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