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독서에서 ‘코헬렛’은 시종일관 인생과 세상사의 허무를 선언합니다. 선인들이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지혜도 몰락했고, 인간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 기울이는 온갖 노력마저도 소용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하느님을 두고도 오직 인간적 지혜와 이성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신앙에도 환멸을 느끼게 되고, 결국 선이라 여겨지는 모든 것이 무상하여 인간은 결코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코헬렛은 절대적인 계시에 관한 집단적인 갈망을 드러냅니다. 이 갈망은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상에 오셔야 메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족 간의 유산 분쟁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라는 예수님의 대답이 의문을 품게 합니다. ‘왜 개입을 거부하실까? 혹시 더 강한 이의 폭정과 강요를 묵인하시는 건가?’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메시지에 반(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제의 근본, 즉 불화와 증오, 불의를 초래하는 원인을 제거하고 싶어 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그분은 물질적 재화를 경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본질적인 유산에 관심을 두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상속받을 하느님 나라(마태 5,3 참조)와 어려운 처지의 형제자매들을 섬긴 이들을 위해 천지창조 때부터 준비된 나라,(마태 25,34 참조) 그리고 썩거나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1베드 1,4 참조)을 염두에 두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인 농부의 안중에는 아내, 자식, 친구, 친척, 밭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 없습니다. 그의 삶의 모든 공간, 심지어 하느님의 자리마저도 농작물과 헛간, 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재산이 그의 우상이며 다른 모든 것은 지워버렸습니다. 그의 회계장부와 지혜는 그야말로 허무입니다. 코헬렛이 기다린 예수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이 영원하며 영원히 지속된다는 본질을 다루고 싶어 하신 겁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라고 하면서 세례로 새로 태어난 우리도 불순물을 걷어내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의 화려한 언변과 논리로 포장된 수많은 주장들이 결국 코헬렛이 “허무로다.”라고 선언한 ‘가치 없는 일’ 내지는 ‘거짓말’이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이경상 바오로 주교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