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1일부터 6월 9일까지 30일간, 지리산을 시작으로 덕유산, 속리산, 소백산, 태백산을 지나 함백산에 이르기까지 440km의 백두대간을 청소년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백두대간으로 간다.”고 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호기심을 보이며 신청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관악산을 오를 때 “이 정도 산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저는 도저히 못할 것 같습니다.”라며 포기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산행인, 청계산에서 바라산을 지나 광교산까지 1박 2일 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은 점점 더해져 백두대간 출발 전 마지막 준비 산행이었던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의 2박 3일 여정을 앞두고서는 우리 모두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백두대간 출발 시간이 되었을 때, 아이들의 얼굴에 드리운 두려움 뒤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지리산 백무동에 모인 우리에게는 이제, 오직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시작된 산행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지쳐가고, 길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돌 위를 걷다 보니 길이 되었네요.” 땅만 보고 걸으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돌 위를 조심스럽게 내딛다 보니, 어느새 뒤를 돌아보았을 때 길이 되어 있었다는 말이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길을 걷다 보니 두통이 와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엄마 생각이 났어요.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왜 그렇게 힘들고 아파했는지 이해할 것 같아요.”라며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나눔을 들려 주었습니다.
30일이 지나 함백산을 오를 즈음,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가족들이 점심을 챙겨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춘기라고 가족과 대화를 꺼리던 무뚝뚝한 아이들이 어머니의 가방을 들어주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겠습니까! 백두대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아이들과 소감을 나누던 자리에서, 한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산을 걸으며 겸손함을 배웠다고 했는데,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시련들이 저를 더 단단하게 하고 겸손함을 배우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의 성장을 통해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기회를 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자녀를 생각하는 그 마음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청할 때,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을 통해 우리 가정에 더 큰 사랑과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백두대간 여정을 걸으며 비로소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최남식 베드로 신부 | 살레시오회(살레시오청소년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