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주인공이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면, 어디선가 낭랑하고도 아름다운 종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딱 두 번의 종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의 아내를 향한 짝사랑이 이루어졌을 때, 두 번째는 한 남자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작품이 끝나고 뒤풀이 장소였는데 사람도 많고 시끌벅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란을 뚫고 한 남자가 스윽 제 곁으로 오는 겁니다. 그러고는 “경호 씨! 경호 씨도 천주교 신자라고 들었는데 혹시 우리 ‘광대승천 제네시오’에 함께하지 않을래요?” 그 남자는 바로 양주호 베드로 형님!
‘광대승천 제네시오’는 가톨릭 신자인 배우들의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그 초대를 받은 순간, 제 귀에서는 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의 초대가 어찌나 반갑고 기쁜지 하마터면 형님을 안아버릴 뻔했습니다. 이렇게 기쁜 일이 생길 때마다 또 슬픈 일이 생길 때, 고민이 생겼을 때나 재미있는 일이 생겼을 때 저는 늘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물론 제 곁에는 아내와 아이들, 좋은 선후배와 친구들이 있지만 어머니란 존재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는 걸 느낍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어머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주고받으며 영혼의 동반자처럼 지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을 때, 저는 제 안의 모든 울음을 토해내며 힘들어했습니다. 당시에 전 고등학생이었고 죽음을 이해하기에도 또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에도 어렸습니다. 하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울어도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 상실감과 슬픔이었지만 우는 것밖에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죠? 사람이 하도 울면 감정의 기억이 몸에 새겨지는 모양입니다. 슬픔을 연기할 때면 제 몸은 그때를 기억해서 인물과 장면에 젖어 듭니다. 슬픔에 싸인 남자의 표정이 어떤지, 목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 온몸은 어떻게 떨리는지 굳이 생각하고 계산하지 않아도 제 몸은 자연스럽게 표현해 냅니다. 어떻게 보면 재연해 낸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당시에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그날의 질문이 지금은 ‘아마도….’라는 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의 슬픔은 연기가 되고 나의 연기는 누군가의 공감이 되는 게 아닐까? 나의 슬픔이 연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더 나아가 희망이 된다면, 그렇게 쓰일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광대승천 제네시오’에서 배우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미사를 드리면서 저희는 요즘 하느님 계획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제네시오 성인은 무대 위에서 성령의 영감을 받아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불타올랐다고 합니다. 저 역시 제네시오 성인처럼 무대에 오를 때마다 또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제 연기에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투영되기를 빕니다. 아멘.
윤경호 바오로 | 배우
글·구성 서희정 마리아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