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삶에 매료되고 그 세계에 눈뜨게 되었던 것은, 대학 시절 봤던 프란치스코 성인 관련 영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분께 매료되자 《잔꽃송이》를 비롯한 그분 전기를 읽게 되었고, 차차 많은 성인전을 읽으면서 교회 전통 안에 있는 풍요로움에 맛 들이게 되었습니다. AI(인공지능) 시대가 온다고 해서 미래는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대마다 당신 사람들을 불러일으키시어 ‘사람됨’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당신께로 이끌어 주신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죠. ‘인터넷의 주보 성인’으로 불렸고 최근에 시성이 확정된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는 하느님을 추구한 21세기 청소년의 좋은 사례입니다.
많은 성인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성인들이 저기 구름 속에 있는 분처럼 느껴진다면, 제임스 마틴 신부님이 쓴 《나의 멘토 나의 성인》으로 성인과 만남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21세기적 감수성과 유머 감각, 개인 체험을 잘 버무려 성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성인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방식을 ‘수호자’형과 ‘동반자’형으로 구분합니다. 수호자형이란, 성인들은 하느님 가까이 있고 우리는 그분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관계입니다. 마치 나를 위해 부모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형이나 누나에게 부탁하는 식으로 성인들과 관계 맺는 것이죠. 동반자형은 하느님께 가는 길에서 성인들을 마치 친구나 멘토로 여기는 관계입니다. 이렇게 성인을 친구나 멘토로 삼게 되면 인생의 지평이 넓어질 것입니다.
성인전에서 순교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순교자 성월을 보내고 있으니 한국 순교자들의 글을 읽고 성지순례 하는 것도 시의적절할 것입니다. 전주 치명자산은 어떨까요? 2014년 시복된 이순이 루갈다의 가족묘가 있습니다. 치명자산 아래에는 전동성당, 한옥마을도 있으니, 신앙에 큰 관심 없는 가족을 유인(?)하기에 좋을 것입니다. 이순이·유중철 부부는 서로 사랑하면서 하느님께 온전히 속한 삶을 살아 동정 부부로 지냈고 꽃다운 나이에 순교했습니다. 참수를 당하며 흰색 피를 흘렸다고 합니다. 《이순이 루갈다 남매 옥중 편지》가 출간되어 있고, 조선 후기 사회와 여성의 맥락에서 학술적으로 접근하여 이순이를 한반도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묘사한 《죽음을 넘어서: 순교자 이순이의 옥중 편지》도 있습니다.
성인은 각자 인생의 무게와 문제를 안고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고유하게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분 뜻을 식별하고 투신해 나간 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이순이 루갈다나 마더 데레사처럼 살아갈 수 없고, 하느님은 그것을 원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추구하며 우리 삶의 자리에서 거룩하게 살아 나가 자신의 성인전을 써나가도록 불리었습니다. 성인들은 이 길에서 수호자이자 좋은 멘토가 될 것입니다.
김우선 데니스 신부 | 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