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유다교의 축제인 오순절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사도 1,14)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오순절은 말 그대로 파스카 후 오십 일이 되는 날에 시작하는 축제였습니다. 유다교의 다양한 축제 가운데 오순절은 특별히 밀의 수확에 감사하는 축제였습니다.(레위 23,15-21 참조) 이 오순절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것처럼 함께 모여 있던 이들은 모두 성령을 받습니다.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는 이미 성령의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 첫 사람인 아담의 코에 숨을 불어넣으신 이래로, 숨, 바람, 영은 모두 같은 낱말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12,4-6) 이 말씀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한 분이신 성령, 한 분이신 하느님, 한 분이신 주님입니다. 곧, 한 분에게서 오는 다양한 은사와 직분과 활동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그것을 일으키는 분은 결국 한 분이십니다.
성령 강림은 모든 신앙인들과 함께하시는 성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에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하느님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가 믿음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전적으로 신앙인들의 삶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습과 성격과 환경이 서로 다르고 다양한 것처럼, 그만큼 우리 안에서 드러나는 성령의 활동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1코린 12,7) 공동선은 공동체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개인을 위한 능력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치를 이루기 위한 힘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를 생각하고, 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에, 조금 더 우리의 마음과 눈을 공동체로, 공동선으로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개인을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선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은 공동체를 지향하고 공동체는 개인의 유익도 함께 생각합니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활동을 애써 외면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기도 안에서 성령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따르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열매는 나를 통하여 공동선을 위하여 주어지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