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요한 신부님의 새로운 소임지는 저희 부부가 오랫동안 후원해 왔던 보육시설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저희가 퇴소하는 청년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길 바라셨고,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청년으로 인해 저는 하느님을 만나는 놀라운 신비를 체험했습니다.
당시 청년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만취 상태로 시설에서 함께 성장한 여자 친구를 불법으로 촬영한 거죠. 제 안에서 편견으로만 존재하던 생각의 조각들이 점점 기정사실이 되려 했습니다. 동시에 청년의 텅 빈 눈동자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찰나였지만 청년에게서 깊은 외로움과 끝 모를 슬픔을 보았거든요. 외면하는 대신 청년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부초처럼 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때론 사고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뒤 두려움이 너무 커서, 그가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을 통해 혈혈단신의 사전적 의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의 편에 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칫 그 모습이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저는 주님께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길 청하고 또 청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청년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고통의 신비 4단을 묵상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느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너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진 것처럼, 네가 안드레아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져 주면 안 되겠니?”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너무나 또렷하고 생생했습니다. 저를 둘러싼 세상이 일순간에 고요하고 따뜻하며 향기로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 감사와 죄송스러움이 밀려와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저는 망설일 겨를도 없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께서 왜 제게 부탁을, 아니 애원을 하실까 의아했습니다. 만일 “싫어요.”라고 대답한다면 그 즉시 “미안해. 방금 한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해줘.”라고 말씀하실 것만 같았으니까요.
저와 남편은 이번 한 번은 잘잘못을 떠나 청년의 온전한 부모가 되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청년이 인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구속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결국 청년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피해자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목숨처럼 여기던 적금으로 손수 합의금을 마련했으며, 친구들을 설득해 탄원서를 받은 결과였습니다. 때마침 한 통의 문자가 왔습니다. 단체 문자였지만 제게는 하느님께서 친히 들려주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곁에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에 대한 묵상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안드레아의 모습으로 저희에게 와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신 덕분에 안드레아와 저희 부부는 이전보다 훨씬 기쁘고 평화로운 날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경아 아녜스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