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문화면의 역할을 지난달에 말씀드렸습니다. 문화(culture)라는 말은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cultus)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문화란 자연의 상태를 인간이 어떤 작용을 해서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혹은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문화사목이란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문화사목이란 문화를 선용하여 사목적 효과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문화를 이용해서 사목적 접근을 하는 것은 앞으로도 더욱더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연극, 음악, 영화, 뮤지컬, 인터넷 등을 통해서 사목의 여러 분야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이 시대의 강력한 언어이며 소통의 도구가 됩니다.
몇 년 전 청년들을 대상으로 토요일에 상담 관련 강좌를 개설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지방의 큰 기업에서 일을 하는 한 수강생과 나눈 대화가 기억이 납니다.
“신부님, 저는 토요일에 쉬고 싶지만 기차를 타고 3시간 가까이 걸려 매주 명동에 강의를 들으러 옵니다. 물론 하루 종일 걸리는 일정이지만 듣고 싶은 강의라 빠지지 않고 왔습니다. 그래도 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이 문화에 대해 얼마나 큰 갈증을 갖고 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신앙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는 어떠한 지역 문화라고 할지라도 모두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2019년 10월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남미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줄 것을 전 세계에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날 ‘아마존의 가난과 고립된 원주민 사회’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 회의(Synod) 분과 토론 개막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곳 바티칸에서 깃털 달린 전통 머리 장식물을 착용한 경건한 사람인 원주민을 비꼬는 말을 들을 때 슬픔에 잠깁니다. 원주민이 쓴 것과 교황청 부처의 성직자 관료들이 쓰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나아가 문화는 지역이나 시간이나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 가치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른들이 볼 때 아이들의 문화가 어색하기는 해도 있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청년들도 부모님의 독특한 문화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문화를 통해 다른 세대가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 젊은이가 7080 부모님 시대 노래의 노랫말을 좋아해서 노래를 통해 꼰대(?)인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울주보의 문화면을 통해 모든 이가 소통하고 대화하기를 바랍니다. 문화를 통한 사목은 우리 교회 안에서 더욱더 강조되어야 하고 실행되어야 합니다.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신자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가톨릭은 이미 보화 같은 콘텐츠를 무궁무진하게 갖고 있으면서 왜 더욱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나요?”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