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란 종종 상대적입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겪은 일도 각자에게 다르게 기억됩니다. 누군가에게는 기쁨이었던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으로 멈춰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도 있습니다. 2020년의 어두웠던 기억을 뒤로한 채, 우리는 아직도 고통과 절망 속에서 2021년을 살아갑니다. 이 시련의 긴 터널을 지나며 주저앉아 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향한 여정인 사순 시기를 열면서, 어머니이신 교회는 기억과 희망에 관하여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제1독서(창세 9,8-15)에서는 노아의 홍수 이후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며 다시는 홍수로 인한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창세 9,15). 이 계약에 관한 희망의 징표가 바로 무지개입니다(창세 9,13).
제2독서(1베드 3,18-22)에 따르면, 베드로 1서의 저자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기억하며 예수님을 통한 구원 사건의 심오한 의미를 풀어줍니다.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1베드 3,20-21)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맺으셨던 계약을 기억하시고 무지개를 희망의 징표로 삼으셨다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세례로 새로 태어나게 하시고 당신 안에 머물며 그 사랑을 기억하고 희망할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오늘 복음(마르 1,12-15)에서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을 보내신 이야기가 간결하게 묘사됩니다. 광야에서의 사십 일 동안 그분께서는 사탄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유혹을 받으셨지만, 결코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셨음을 다른 복음서(마태 4,1-11; 루카 4,1-13)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무관심·나약함·이기심 때문에 고난을 겪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기억이란 종종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은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은 기억입니다. 비록 고통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소중했던 일상을 기억하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과 함께 희망할 수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하기에 과거의 기억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삶의 원천이 됩니다. 사순 시기 동안 기억과 희망으로 부활의 빛을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