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던 것은 죄와 죽음으로 얽혀있는 인간들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음을 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낮추시어 우리 중에 한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육화의 신비가 이 사건에서 온전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신 직후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는데, 이는 예수님의 신원과 사명을 드러내는 하늘의 증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세례는 요한이 예고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이 선포되고 그로부터 구세주로 오신 그분의 공적 사명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일생을 통하여 당신의 아버지가 또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주님의 기도(마태 6,9-15)를 가르쳐 주신 것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마태 28,19)주라는 마지막 사명 수여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당신의 아들, 딸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밝혀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전해주신 놀라운 새로움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봅시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감히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이 근원적 관계는 그 무엇으로도 부정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소멸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의 모습이 하느님 앞에 떳떳지 못하고, 하느님 아닌 것에 대한 애착과 미련과 욕망으로 우리의 내면이 몹시 불편하고 일그러져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여전히 우리를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요 딸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택한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가 바로 당신의 아들이요 딸이라고 거듭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부족하고 합당치 않은 우리의 모습에만 머물지 말고, 아무런 조건이 없는 하느님 사랑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 등촌1동성당 주임 겸 17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