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는 별이 잘 안 보입니다. 서울에서 별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조명이 너무 밝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서울에서도 밝은 별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별이 안 보이는 이유는 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신비는 모두 다 밝혀지지 않아서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숫자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많은 별 중에서 그분의 별을 발견하고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 년 동안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엄청난 핍박과 고통의 삶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을 구원할 구세주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구세주인 예수님께서 태어난 것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머나먼 지역에 살고 있는 동방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동방 박사의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동방박사들은 아주 먼 곳에 있었지만, 구세주의 별을 보았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합니다. 지척에 있던 유다인들은 그분의 별을 보지 못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왜 별을 못 보았을까요? 혹시 너무 가까이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였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분의 별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쩌면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 가족, 친지, 혹은 나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구세주께서 다시 태어나실 곳, 베들레헴은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별들 중에 구원으로 이끄는 별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저절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많은 수고와 노력이 따를 것입니다. 다행히 예수님께서 당신을 진리요, 길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을 보고 그분을 따라간다면 영원한 생명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발 더 나가서 우리 자신도 다른 이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분의 별이 되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주님을 찾는 방법은 네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즉 구세주이신 주님은 우리 사이에 계시고, 우리 마음 안에 자리 잡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알아보아야 하며, 오로지 하느님께만 모든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올 한해 나와 이웃 안에서 그분의 별을 발견하기를 소원합니다.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 서울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