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더라도 참 흐뭇한 글입니다. 1980년 1월 27일 자 서울주보의 3면 교회 소식란에 눈에 띄는 제목이 두 개가 있습니다. <서품일자 결정> “금년도 서울대교구 사제서품 예정자들은 오는 2월 25일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김 추기경 집전으로 사제품에 오른다.”
경갑실(요한), 이기락(다테오), 허근(발도로메오) 3명의 부제가 사제품을 받게 되면 서울대교구의 사제는 187명이 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대신학교 입학식 때 서울대교구 소속 신학생은 20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중에 약 10~20% 정도만 사제가 되었다는 것이죠. 신입생이 많아야 사제 서품자들도 많은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1980년도 들어서면서 서울 지역이 커가는 동안 지역에 맞게 성당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목자의 부족에서 오는 문제도 컸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직 개발이 안 된 어느 텅 빈 운동장 같은 곳에서도 사제를 파견해서 임시 성당을 마련하고 미사를 시작하면 신자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사제를 양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아래에 있는 ‘신학교 소식’에서 <사제 지망자 급증>이란 제목이 다행스럽습니다. 내용을 보면 1979년에는 서울대교구 사제 지망 입학생이 27명(전체 사제 지망생 72명 중)인데 비해 1980년에는 44명(전체 사제 지망생 103명 중) 으로 서울대교구는 물론 전체 사제 지망생 숫자도 껑충 뛰었다는 소식입니다. 전체 사제 지망생도 30명 이상 늘었고, 서울대교구도 14명이 더 늘은 것으로 나옵니다. 유럽 교회에서 사제 지망생이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데 한국 교회는 오히려 1980년 이후에도 계속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1980년에는 일반 고교 및 예비신학생 출신의 숫자가 소신학교 입학생보다 3배가 많습니다. 새로운 성소 양성의 필요성을 볼 수 있는 대목이죠. 서울대교구의 사제 지망생과 매년 사제 서품 숫자는 1980년 이후부터 급증하는 데, 이는 서울대교구의 폭발적 성장과 비례하고 있습니다.
1984년 제가 서품을 받았을 때만 해도 보좌신부가 있는 본당은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사제 한 명이 4~5천 명을 사목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성소후원회는 기도 봉사와 함께 신학생들이 편안하게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데, 아쉽게도 성소후원회가 결성된 본당은 전체 본당의 50% 정도 밖에 안되었습니다. 오늘날 성소후원회의 발전은 성소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 많은 신학생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교사를 받은 교회에서 외국에 선교사를 파견할 정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아직 한국 교회가 그래도 성소가 많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상승곡선을 그릴 수 있을까요? 인구 감소세가 뚜렷한 우리 나라는 이미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성소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