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1코린 1,3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다시 한번 사순 시기를 맞이하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깊은 성찰과 회개의 여정에 들어섭니다. 사순 시기는 무엇보다 우리 존재가 하느님 앞에 다시 서는 회개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사순은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의 시간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속한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믿음을 새롭게 다지는 기회이며, 동시에 서로를 위한 사랑과 연대의 실천을 통해 서로 화해하며 하느님의 평화를 이루는 시간입니다.
사순 시기의 시작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보내신 40일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라는 고독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의지하며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분의 광야 체험은 단순히 육체적 고난을 넘어, 세상의 시끄럽고 어수선함과 혼란 속에서도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뜻을 따르고자 하는 믿음과 인내의 표본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 또한 마치 광야와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갈등과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과 관점이 부딪히며 깊은 상처와 분열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극단화된 분열과 갈등은 서로를 편 가르고 상대를 비난하는 상황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정치의 관점에서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세상이 되어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광야의 모범을 되새겨야 합니다. 사회적인 갈등과 대립 속에서 비록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입장, 서로 다른 환경의 상대방에 대해서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고귀한 피조물인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의 굳건한 믿음과 식별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현 상황을 직시하고 상대방을 경청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 각자가 이러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더불어 이 여정이 개인적인 성찰에만 머물지 않길 바랍니다. 사순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를 위한 기도의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기를 통해 우리 사회 안에 있는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길을 찾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서로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화해로 나아가는 것은 단지 개인적인 덕목이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와 사회가 치유되는 길임을 기억합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하느님 안에서 이루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며 상호 간에 오고 가는 “정화와 성숙”임을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지성과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7항)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사랑을 찾아가는 의지적인 여정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보여주신 믿음과 인내를 본받아, 우리 역시 세상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사랑을 따라 상대방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임을 믿으며, 서로를 위한 경청과 존중, 기도와 사랑의 실천으로 이 여정을 함께 걸어갑시다. 갈등과 분열이 아닌 화합과 연대의 길로 나아가는 이번 사순 시기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