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통의 시작에는 배반이 있었습니다. A는 당시 막 저의 대학원 후배가 된 참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같은 교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저와 달리 그는 우리 학부 출신이 아니어서 그야말로 혈혈단신의 처지였기에 교수님께서 제게 특별히 부탁한 터였습니다. 저는 제 나름으로 A를 지극히 챙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A가 함께 하는 스터디에 불충실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즈음 A는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결국 A는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나중에 안 것이지만 떠나면서 그동안 쌓인 불만을 여기저기에 늘어놓고 갔더군요. 이 사람에게는 교수님에 대한 불만을, 저 사람에게는 저에 대한 불만을 성토한 식이었습니다.

     저는 앞과 뒤가 다른 A의 행동에 대해 무척 상처를 받았습니다. 일 년이 넘도록 A의 행동이 이해되지도 잊히지도 않아 괴로움이 컸죠. A에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왜 제가 그런 뒷말을 들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처음 성당에 와 아무것도 모르고 누구에게 물을 줄도 몰라 미사에서 두리번댈 때 가만히 찬송가 책을 건네주던 분이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책을 돌려드려도 그저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죠. 그렇게 저는 그분과 눈인사를 하게 되었고, 세례를 받을 때가 다가오자 부탁드렸어요. 저의 대모님이 되어달라고. 성당에서 이웃분들과 두루 인연을 맺어주시기도 하지만 저는 얌전하고 신실한 그분의 아우라에 이미 마음을 정한 터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추길자 파트리시아 대모의 대녀가 되었지요. 이 대목에서 대모님이 생각나는 이유는 그때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 그분의 가만한 마음이었단 사실 때문입니다.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았던 대모님의 호의 말이죠.

     어쩌면 A에게 제가 부담을 주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또 최선을 다했을 테니까요. A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오래 고민했고 이제는 그만 미워해도 될 자격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도 했습니다. 제 삶에서 중요하다 여기지도 않는 사람으로 인해 너무 오래 고통스러웠으니까요. 그런데 미워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미워해야 할 것이며 그것은 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던 찰나에 대모님과의 첫 만남이 떠오른 것입니다. 고요한 성당의 품에서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고 조건 없이 베풀어주신 조용한 배려, 그로 인한 인연. 그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이 아닐까 지금에서야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A에게 조용한 사랑을 주지 못한 저는 하느님이 맺어주신 인연 안에서 사랑의 모양을 배웁니다.

황유지 사라 |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