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하와)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 3,6) 그들은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필요’가 아니라 ‘욕심’ 때문에 열매에 손을 댄 것입니다. 다른 열매에 비해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열매’, 요즘 말로 하면 소위 ‘명품’ 열매에 대한 집착이 죄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필요’가 아닌 ‘욕심과 탐욕’으로 범하는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49ㄱ.51ㄴ) 신앙을 갖게 된 이유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함이라고 하거나,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 기댈 곳을 찾다가 천주교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목적이 단지 마음의 평화뿐이라면, 차라리 정신 수련하는 곳에 가서 도를 닦는 편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때때로 마음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아는 가난함을 요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꺾어야 하는 결단도 요구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분열의 의미’입니다. 가족끼리 대립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떼어내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많은 집착과 갈라섬(분열)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이 없었더라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들인데, 신앙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오히려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거라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런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칼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한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칼은 상대방을 향해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죄의 유혹을 잘라내고자 내가 나에게 휘두르는 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화는 다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연장이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인생의 열매를 위해서도 좋은 연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칼을 주러 오셨습니다. 분열, 즉 잘라내고 갈라서라고 말입니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 내리는 결단이며, 말씀으로 인해 겪게 되는 아픔인 칼을 주러 오셨습니다.
‘거룩한 망나니(?)’가 되어, 예수님께서 쥐여주시는 칼로 온갖 유혹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삶의 시련과 고통을 믿음으로 이겨낼 때,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김현웅 바오로 신부 |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