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으로 올 12월까지 아지트에서 함께 일하게 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왜 아지트를 일자리로 지망했는지 물어보니 기도 안에서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호기심에 신앙 차원에서 좀 더 깊이 있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예수님을 네 삶의 중심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사니?” 그러자 그 친구는 고민 없이 곧바로 “예, 저는 예수님을 저의 주님으로 모시고 삽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2~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면담은 한 시간 가량 이어졌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사목하면서 본당에서든 교구 대학교사목부에서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산다는 대답을 그 어떤 청년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주변 동료 사제들도 그런 청년이 있다고 말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면담을 계속하면서 그 청년에게 들은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습니다.

     저희가 진행하는 연구를 도와줄 목적으로 채용된 그는 서울대학교 아동가정학과 박사 과정에 있는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우연히 교내 사람들을 통해 아지트를 알게 되었는데, 본인이 서울대에서 아동가정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유도 가정의 성화를 위해서였으며, 주님을 체험하면서 더욱 열심히 준비하게 되었고, 사실 처음부터 자신이 이 학과를 고른 것 역시 주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아 선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박사가 된 이후 교수가 되려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런 방향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 친구는 “저는 국내든, 무슬림 지역이든 사람들의 가정을 성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슬림 가정들이 많이 깨지고 불화가 심해서 그들에게 예수님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가장 큰 걸림돌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의 학력이라고 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지금 제가 공부해서 받게 될 소위 서울대학교 박사라는 타이틀이 제 신앙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서 힘들어요. 제가 자꾸 교만한 마음을 먹도록, 때론 저에게 더 쉬운 길을 가도록 유혹할까 봐 불편하고 겁나요. 제가 무슬림 가정의 성화로 마음 정한 것도 개인적인 결심이 아니라 오랜 시간 주님께 기도하면서 그 뜻을 물은 결과거든요. 그렇게 해서 받게 된 부르심이라 이 부르심에 겸손하게 응답하여 따라가고 싶은데 세속적인 타이틀이 주님께 가는 데 방해가 될 때가 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이 대화를 나누면서 신선하고도 거룩한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활 시기를 지내는 우리는 오늘 제1독서에서 “백성은 그들(사도들)을 존경하여,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났다.”(사도 5,13-14)라는 말씀을 만납니다. 우리 주변에는 세상의 방식으로 존경받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이 청년처럼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서 주님의 진리로 세상을 이기는 참된 부활의 증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은성제 요셉 신부 |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서울A지T)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