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사정으로 여기저기를 떠돌던 우리 가족은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처음으로 ‘정착’이란 걸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시장 근처에서 식당을 하시게 됐는데, 너무나 바빠 저와 제 동생을 챙길 여유가 없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형제만 집에 두기에도 불안하셨던 어머니께서는 특단의 결정을 하셨습니다. 저희 형제를 하느님께 맡기기로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결정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무탈하게 잘 지켜주고 계시니까요.
저는 금세 성당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린 제 눈으로 봐도 성당 밖은 시끌벅적하고 그야말로 전쟁터인데, 성당 안은 고요하고 고왔습니다. 마치 다른 세상인 듯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고, 신부님과 수녀님의 모습이 평온해 보여 좋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친구인 ‘베드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오로와 베드로는 성당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제가 잠시 유혹에 흔들린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의 꾐에 넘어가 오락실의 세계에 눈을 떠 버린 겁니다. 저에게는 어머니께서 손에 꼭 쥐어주신 헌금도 있겠다, 성당에 다녀왔다고 하면 만사 오케이인 알리바이와 저를 향한 어머니의 굳은 믿음까지 있었습니다. 오락실에 안 갈 이유가 없었죠. 이게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니 거짓말도 늘어서, 주일학교가 끝날 때쯤에 성당 앞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성당 친구들과 어울려 집으로 가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베드로는 거짓말을 위해 성당에 오는 저를 매우 따가운 시선으로 쳐다봤습니다. 그 눈빛이 저의 마음을 찌르던 어느 날, 베드로는 저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탄에 물든 놈! 사탄아, 물러가라!”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엽고도 웃음이 나는 외침이지만 당시에 저에게는 큰 비수가 되어 꽂혔습니다.
이후, 죄책감에 마음이 괴로웠던 저는 과감히 사탄을 물리치고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 곁으로 다가갈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미사는 시작됐는데 성전 뒤에서 쭈뼛대고만 있는 저를 수녀님께서 발견하시고는 “바오로야, 이리 와.”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성가대석 뒤쪽 외딴곳으로 데리고 가셔서 “잘 왔어.”라고 하시면서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 따스한 품에서 얼마나 꺼이꺼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 안에 잔뜩 쌓였던 불편한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고 하느님께 용서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신앙심이 뭔지는 몰라도 이렇게 나를 언제든 받아주는 곳이라니! 그날을 계기로 저는 성당이 더욱더 좋아졌습니다. 오락실의 유혹에 ‘사탄아, 물러가랏!’이라고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을 만큼요.
윤경호 바오로 | 배우
글·구성 서희정 마리아 작가
